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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FASHION

꾸안꾸의 정수, 슬래커 코어

“대충 입은 것 아닙니다” Z세대 사이, 과한 꾸밈을 거부하는 '슬래커 코어'가 뜬다

Editor 배터리(Better Lee)

2026.08.12

87

2026.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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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배터리(Better Lee)
[잇(it)템 졸업식]  


패션계를 사로 잡은 it템에 대한 모든 것. 역사부터 최신 트렌드까지 낱낱이 파헤친다.

켄달 제너가 공항에서 찍힌 사진이 화제가 됐다. 딱 붙는 슬리브리스에 헐렁한 팬츠, 납작한 슈즈. 대충 걸치고 나온 것 같은데 묘하게 멋스럽다. 카이아 거버도, 지지 하디드도 비슷한 무드다. 이른바 '오프 듀티 룩', 셀럽이 공식 일정에서 벗어나 편안하게 입은 사복 스타일이 오히려 가장 핫한 패션 레퍼런스가 되고 있다. 이 역설적인 흐름의 이름이 슬래커 코어(Slacker Core)다.

슬래커 코어의 뿌리: 1990년대 그런지 문화

슬래커 코어의 출발점은 199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슬래커(Slacker)'는 게으른 사람을 뜻하는 말로, 당시 서구의 그런지, 스트릿, 락밴드 문화에서 자라난 젊은 세대의 태도를 반영한다. 화려하게 차려입는 대신 편안함과 개성을 우선시하고, 과한 꾸밈을 거부하는 것이 그들만의 방식이었다.

그 태도가 지금 현대 패션으로 재해석되고 있다. 화려한 컬러와 과감한 스타일링이 유행했던 흐름과 달리, 최근에는 개인의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이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스타일을 선호하는 움직임이 뚜렷해지고 있다. 꾸민 듯 꾸미지 않은 '꾸안꾸(Effortless Chic)'와 맞닿아 있는 스타일이기도 하다.

셀럽이 증명하는 슬래커 코어


 

슬리브리스에 로우라이즈 팬츠를 매치한 켄달 제너(Kendall Jenner)의 오프 듀티 룩 ⓒGetty 

슬래커 코어를 가장 잘 소화하는 인물로는 켄달 제너, 카이아 거버, 지지·벨라 하디드 자매가 거론된다. 딱 붙는 슬리브리스, 허리선이 살짝 내려앉은 헐렁한 팬츠, 굽이 낮은 발레 플랫, 선글라스. 이 조합이 슬래커 코어의 가장 대표적인 공식이다. 상의는 몸에 붙게, 하의는 넉넉하게 입는 실루엣이 핵심으로, 아이템 하나하나는 평범한데 조합하면 묘하게 계산된 것처럼 보인다는 게 이 스타일의 매력이다.

남성 씬에서는 국내 아이돌 그룹 코르티스가 화제다. 빈티지한 티셔츠에 힙한 목걸이와 선글라스로 포인트를 준 스타일링이 SNS상에서 크게 바이럴되며 슬래커 코어를 대중에게 각인시켰다.

새깅도 슬래커 코어다


 

슬래커 코어와 함께 바이럴된 아이돌그룹 코르티스 ⓒ코르티스 인스타그램 계정 @cortis 

슬래커 코어의 확산과 함께 주목받는 스타일이 하나 더 있다. 바지를 내려 입어 속옷 밴드를 드러내는 '새깅(Sagging)'이다. 한때 저스틴 비버의 상징처럼 여겨지던 이 스타일이 최근 남녀 연예인 모두에게 사랑받으며 다시 주목받고 있다.

과거 새깅이 관능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는 데 초점을 뒀다면, 지금의 새깅은 편안한 무드를 기반으로 한다. 슬리브리스 혹은 베이비핏 상의에 큼지막한 오버핏 카고 팬츠나 통 넓은 트레이닝 팬츠를 골반 라인까지 내려 입어 이너웨어를 살짝 드러내는 방식이다. 완벽하게 세팅된 룩 대신 방금 침대에서 빠져나온 듯한 무심함이 오히려 힙한 무드를 만든다는 것이 핵심이다.

후아유 슬리브리스, 7월 한 달 217% 성장

슬래커 코어를 연상케하는 후아유 화보 룩북

슬래커 코어 열풍은 숫자로도 확인된다. 이랜드월드에서 전개하는 아메리칸 캐주얼 브랜드 후아유(WHO.A.U)의 슬리브리스 카테고리 매출은 7월 한 달 기준 전년 동기 대비 217% 성장했다. 베이비핏 티셔츠는 출시 직후 초도 물량이 조기 완판되며 추가 생산에 돌입했다.

후아유가 이 수요를 정확히 겨냥할 수 있었던 건 2535세대 고객의 현실적인 고민을 파고들었기 때문이다. 고감도 브랜드는 가격 부담이 크고, 합리적인 가격대의 브랜드는 스타일이 진부하다는 딜레마. 여기에 SNS 속 셀럽처럼 자연스러운 '잇 걸' 무드를 원하지만 지나치게 타이트한 실루엣은 부담스럽다는 지점까지. 후아유는 과하게 조이지 않으면서도 몸을 타고 흐르는 실루엣을 구현하고, 필름 사진 같은 빈티지 컬러 팔레트로 2000년대 아카이브 감성을 더하는 방식으로 이 간극을 채웠다.

대표 아이템 '헨리 슬리브리스'는 골지 소재로 완성한 민소매 탑으로 몸의 라인을 자연스럽게 살리는 실루엣과 다양한 컬러 라인업이 특징이다. '슬로건 티셔츠'는 1990년대부터 2000년대 글로벌 패션 아카이브에서 영감받은 컬러와 크롭 실루엣으로 빈티지한 감성을 표현했다. 베이비핏 티셔츠는 2만원대로 기획해 진입장벽을 낮췄다.

슬래커 코어, 유행이 아니라 태도다


완벽하게 차려입은 룩이 오히려 촌스러워 보이는 시대다. 대충 걸친 것 같은데 묘하게 계산된, 그 역설이 지금 가장 힙한 무드를 만들어내고 있다. 1990년대 그런지 문화가 심어놓은 그 태도가, 지금 가장 세련된 언어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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